Read: 1381, Vote: 1, Date: 2006/02/08 14:34:56
 
글 제 목 누구를 위하여 비밀입양을 해야한단 말인가?- 입양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개입양 (퍼온 글)
 
작 성 자 천사
 
 
  어느 사회든 자녀를 얻는 방법은 혈연이 보편적이며 반.드.시 보편적이어야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입양대상 아동이 한 명도 발생하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원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낳은 부모랑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자녀를 갖기 원하는 부모는 누구든지 자녀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경험을 누려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입양대상 아동이 없던 시절도
출산을 원하는 자마다 모두 자녀를 잉태하던 시절도 존재해 오지 않았다.
우리는 보통 부모님의 사랑은 하늘같아서 모두들 죽도록 자녀를 사랑하는 줄 알았고
결혼하면 누구나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보편적인 범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평범한 사람이 주는 편안함, 그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낳은 부모를 상실한 아이,
자녀를 낳지 못해 평생 꿈꿔온 자녀를 모두 상실한 불임부모,
자녀는 낳았으되 키울 수 없어서 맥없이 손을 놔버린 채 그 상실감을 감추고 평생 살아갈 生母.

이 삼자 중 누가 자신의 아픔을 널리 알려 보편적인 범주에서 자신을 빗겨나가게 하고 싶겠는가.
언제 어느곳에서 부지불식간에 어떤 희생을 강요당할지 예측할 수 없는데 누가 자기자신과 자기자녀가 견뎌내야 할 상채기를 드러내 보이며 고통을 즐기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입양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비호처럼 꽂히는 비밀입양의 유혹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위해서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싶다지만 사실은 입양전에 낳은 부모를 상실했다는 사실때문에 슬퍼하는 것을 직면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두려운 나머지 차라리 은폐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입양을 지지하지 않는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차후 어떤 긴장감을 불러올지 염려하는 마음도 있다.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한 아이의 인생에 엄청난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넘지 못할 산이 아니다.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평생토록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입양아동이 반드시 풀어가야 할 과제다.

아이를 위해 어떤 거짓말,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입양을 비밀로 하려는 의지는
입양을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보다 현명하다고 볼 수 없다.
입양을 출산으로 둔갑시킨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며
비밀유지를 위해 대인관계가 자연스럽지 못할 수 있다.
입양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차단시킴으로 아이가 오히려 입양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 있다.

불임,
불임은 출산을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입양이 출산경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입양 후에도 불임에 관한 상실감은 평생토록 유지된다.
다만 출산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양육경험을 하지 못한 부분만 입양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다.
출산은 짧은 기간에 이뤄지지만 양육은 긴 기간동안 이뤄지므로 피부로 느껴지는
양육은 출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입양과 출산은 분명 여러면에서 다르다.
다르다는 의미가 틀리다는 의미도 불충분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경험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감동이 다르다.
이 모든 것을 누군가와 나누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스스로 엄청난 담을 쌓는 것이며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평생토록 고립된 상태로 건강을 유지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크든작든 입양에 대한 편견에 오래도록 사로잡혔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에 노출되었을때 입양부모라 할지라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입양에 관한 재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한다.
관계의 형태보다 관계의 질이 자녀의 일생동안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40주동안 자궁속에 품으며 절박한 상황에서 상호의존관계였던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여인들의 슬픔과 아픔은 아마도 평생 마주치고 싶지 않은, 도려내고 싶은 매듭이리라.
자신이 주지 못했던 것들을 누구보다 풍성하게 누리기를 바랬던 사람.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하고 아이를 출산했던 그 날이 되면 홀로 괴로워할 것이다.
양심의 울림때문에 감히 사랑했노라는 말조차 내뱉지 못할 것이다.
입양 보내는 그 순간 영원한 이별을 고하면서 모든 일이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큰 오산이다.
입양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부분 낳은 엄마로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올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비록 볼품없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뿌리는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오직 입양을 보낸 여인만이 들려줄 수 있으며 잃어버린 퍼즐조각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입양은 낭만이 아니다.
입양은 어른들의 편의에 의해 다뤄질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의 욕구가 어떠하든 입양의 주체가 될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밀입양은 더이상 유지되어서는 안된다.
비밀입양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비밀입양은 달콤한 유혹으로 두려움만 두텁게 할 뿐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입양에 대한 편견을 이유로 비밀입양을 강요한다.
하다못해 입양업무를 보는 전문인들조차 비밀입양을 강요한다.
입양에 관한 편견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바로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바로잡아질 수 있다.
교육만이 편견을 제거하는 힘이 있다.

올바른 교육이 있기 위해서는 입양부모들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나눠야 한다.
우리 속에서 아기를 안자마자 힘없이 사라졌던 두려움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두려움들을 나눠야 한다.
우리 안에서 무한정 솟아나던 모성애와 첫 만남에서 느꼈던 낯설음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어떤 말이나 행동들이 우리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고백해야 한다.
나누지 않은 상태로 우리 마음이 흡족할만큼 질좋은 헤아림을 받을 수는 없다.

입양부모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입양부모들은 외부로부터 그 어떤 상처도 받기 싫다.
입양부모들은 입양아동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입양부모들은 입양아동이 어떠한 편견에도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입양부모들은 입양대상아동의 형편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 때문에 마음아파한다.
입양부모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자발적으로 입양전도사가 된다.

이 모든 것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비밀입양을 해야한단 말인가.
누구도 우리한테 비밀입양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대부분 입양신고방법에 있어서 친자와 양자 두 가지로 선택의 폭이 주어진 줄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에 친자로 입양신고를 하는 방법은 없다.
친자로 호적에 올리는 방법은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다.
입양신고법은 분명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입양역사 50년동안 잘못된 법은 고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비밀입양에 편승하여
편법을 안내해온 입양기관은 이제라도 무엇이 합법적인 입양신고절차인지 친절하게 안내해야 한다.
입양기관에서 적법한 입양신고안내를 해주지 못하는 것은 무척 유감스런 일이며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비밀입양의 달콤한 유혹을 과감히 뿌리쳐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아이들로 키워내야 한다.
잘못된 법은 고쳐질 수 있도록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한다.

나는 비밀입양을 선택하신 분들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에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용기를 내보시라는 부탁을 꼭 드리고 싶다.
비밀에 부치기에는 입양된 아이에게 너무도 엄청난 삶의 변화이자 중요한 문제이므로
용기를 내시고 같은 마음을 가진 엠펙가족들과 함께 삶을 나누면서 입양이라는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자는 정중한 프로포즈다.